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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시장과 싸우는 무모함

건설경제연구원 2020.07.29

동양의 여러 고전들이 오늘날까지 널리 읽히고 회자되는 이유는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고전 중의 고전이라 할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는 부(富)와 부자(富者)에 대한 이야기인 ‘화식열전(貨殖列傳)’이 있다. 2000년도 넘은 옛날에 쓰여진 역사서에 부와 부자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 것도 놀랍지만, 그에 담겨 있는 부에 대한 통찰은 더욱 놀랍다. “천하 사람들이 왁자지껄 오가는 것은 모두 이익 때문이다.”라고 역설하고 있으며, 가장 좋은 정책은 “자연적인 원리와 흐름에 순응하는 것”(善者因之)이고, “매사에 간여하고 백성과 다투는 것”을 최악(最下者與之爭)이라고 설파하고 있다. 또 다른 유명 고전인 한비자(韓非子)에도 “장어는 뱀과 비슷하고 누에는 벌레와 비슷하다. 누구나 뱀을 보면 놀라고 벌레를 보면 징그러워한다. 그럼에도 어부는 맨손으로 장어를 잡고 여자들은 누에를 만진다. 이익이 되면 용감해지기 때문”이라고 설파하고 있다.

이처럼 인간은 본능적으로 부를 추구하는 존재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부유하게 살고 싶어 하고, 보다 안락한 환경에서 살기를 원한다. 그 과정에서 여러 치열한 추구와 모색과 부딪침이 있고, 이것이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발전시켜 온 원동력인 것이다. 작금의 우리사회의 핵심적 이슈는 단연 주택문제이다. 필수적 기본재인 주택가격이 급등하여 국민들의 삶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는 다주택자의 세금부담을 강화하는 내용의 22번째 대책을 발표했다. 거의 한 두 달에 한 번씩 기억하기도 어려울 수많은 대책들이 발표되고 제시되었지만 주택문제는 더욱 꼬이고 어려워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시장과 맞서 싸우는 무모함 때문이다. 시장을 이기려는 어리석음과 시장을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 때문이다. 분양원가 공개, 분양가와 대출 규제와 같은 반시장적 정책이 넘쳐 나고 있다. 분양가 규제는 로또 청약을 불러오고 대출 규제는 소위 줍줍족 등과 같은 현금부자들에게 부를 늘릴 기회를 제공했을 뿐 대다수의 도시민들에게는 치솟는 주택가격과 전세가격의 앙등으로 깊은 좌절감을 안겨주고 있다. 정부가 시장과 싸우는 사이에 국민들의 삶은 날로 피폐해지고 있는 것이다.

오랜 시간을 주택과 씨름해 왔고 부동산을 공부해 온 필자에게 최근의 주택문제가 참으로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은 시장원리에 맡기고 시장기능에 입각했더라면 쉽게 풀어갈 수 있는 문제를 시장과 싸우느라 헝클어지고 꼬이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주택이 인간생활의 필수적 기본재라는 특성이 크다 해도 주택도 엄연히 시장에서 사고 팔리는 상품이다. 그러므로 기본적으로는 시장 기능에 맞기고 정부는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는 역할만 하면 된다. 자력으로는 어려운 저소득계층의 주거문제 해결에 역량을 집중하면 되며, 그 이외의 계층의 주택문제는 시장기능에 맡기되 원활한 주택공급에 어려움이 없도록 규제를 풀고 걸림돌을 치워주는 역할만 충실히 하면 된다. 규제만 풀어주고 활약할 무대만 만들어 주어도 도시는 빠르게 발전하고 변모한다.

오늘날 우리나라 IT산업의 핵심기지가 되고 있는 가산디지털밸리는 부동산 디벨로퍼들이 만들어낸 대표적인 성공사례이다. 섬유, 가발과 같은 노동집약적 산업의 쇠퇴로 황폐해진 구로공단을 아파트형공장과 그 발전된 모델인 지식산업센터를 도입해서 오늘날의 가산디지털밸리를 만들어 낸 것은 모두 민간 디벨로퍼들의 열정과 창의력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과감히 규제를 풀어 디벨로퍼와 건설기업들이 활약할 수 있는 무대를 열어 주어야 한다. 용적률과 층고규제, 용도지역과 지구단위계획 등의 토지이용에 대한 과도한 규제를 풀어주기만 해도 시장기능은 곧바로 회복된다. 디벨로퍼와 건설기업들이 앞다투어 사업을 추진해 나갈 것이고, 이를 통해 늘어난 주택공급은 주택시장을 안정화시키게 될 것이다. 국민들에게는 도심의 용적률과 층고규제를 완화하고 개발규제들을 풀어 주택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리겠다는 시그널을 확실히 주어야 한다. 그래서 서둘러 집을 사지 않아도 되고, 지금 급하게 집을 사는 것이 꼭지에서 사는 것이며 상투를 잡을 위험성이 크다고 느끼도록 해야 한다.

이미 여러 전문가들이 수없이 지적하고 강조했듯이 주택시장을 안정시키는 첩경은 주택이 필요한 곳에 공급을 늘리는 것 밖에 없다. 그 어떤 제도와 수단으로도 더 나은 환경에서, 더 좋은 집에서 살고자 하는 욕구를 억누를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주택공급이 부족하지 않다고 강조하지만 주택의 절대수가 아니라 살고 싶은 여건과 편리한 환경을 갖춘 집이 부족한 것이 문제임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세계의 많은 도시들이 주택문제를 안고 있지만 왜 수요억제가 아닌 공급확대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지를 깊이 인식해야 한다.



이형주(건설주택포럼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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